금자광록대부 태사 특진상주국 검교문하시중 동평장사(金紫光祿大夫太師特進上柱國檢校門下侍中同平章事)를 지내셨다. 공께서 일찍이 태자(太子)의 스승을 지내셨는데 왕위에 올라 예(禮)를 행할 일이 있어서 묻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공을 불러 물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공의 경학(經學)과 아름다운 덕은 세상의 모범이 된다고 하였다. 삼가 구보(舊譜)를 조사해 보면 충정왕(忠定王) 을묘(乙卯)에 서연(書筵)을 베풀고 공을 집의(執義)로 삼아 박충좌(朴忠佐) 이제현(李齊賢) 윤탐(尹耽) 나영걸(羅英傑) 조문근(趙文瑾) 정천유(鄭天濡) 홍준(洪俊) 등 여러 현인들이 날마다 바꾸어가면서 왕을 모시고 학문을 토론하였다고 하였다. 이런 내용이 구보에는 공의 손자 판서공(判書公) 연(淵)의 방주(傍註)에 실려 있으나 시대를 참고하여 보니 이는 반드시 태사공의 사적을 잘못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옮겨 싣는다. 홍무(洪武) 庚申(一三八0)卒配정경부인(貞敬夫人), 혹은 군부인(郡夫人)은 영광김씨(靈光金氏)로 홍무 경진년에 돌아가셨으며 묘소는 순창군 남시랑동(南侍郞洞)유좌이다.